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정환/지도자 경력 (문단 편집) ===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서 === 요약하자면 '''[[최익성|최강의 리드오프가 될 수 있던 타자]]를 내쳤고 [[임창용|당시 리그 최고의 마무리]]를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무너질 때까지]] 신나게 굴렸다'''.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 시절에는 성적은 괜찮았고[* 1998년 2위, 1999년 매직리그 1위였다.] 흥행도 준수했지만 팬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선동열|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삼성 타선의 한 축이자 20-20까지 했던 [[최익성]]을 [[저니맨]]으로 만들어놓고[* [[최익성]] 본인에 의하면 2군 코치시절부터 서정환과의 궁합이 잘 안 맞았으며 사이가 엄청 안 좋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서정환은 [[최익성]]의 타격폼에 대놓고 디스를 하고 마찰을 빚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최익성]]은 스승인 [[백인천]] 감독이 전수 받은 타격폼으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자신의 은사인 백인천 감독이 떠나고 서정환 감독이 하라는대로 타격폼을 바꿨는데 그 타격폼이 생각보다 잘 안나간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신인이었던 [[강동우]]가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출장기회를 조금씩 잃어가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때부터 [[최익성]] 본인의 야구인생이 꼬이면서 저니맨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최익성이 사사방과 자서전에서 서정환을 대놓고 강도 높게 깠을 정도였으니 자기 야구 인생에서 서정환을 최악의 인물로 꼽고 있다. 백인천 감독과 조창수 감독대행에게는 최익성의 야구열정에 대한 이해도를 열었지만 서정환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고, 성실한 선수와 비정한 지도자의 이면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자 삼성 시절 서정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임창용]]을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은 결과 플레이오프 7차전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최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 역사상 최악의 감독을 언급하려면 김성근, 선동열과 같이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임창용 혹사는 해태시절 김응용 감독때 2년 동안 혹사당하고 삼성 이적 이후 서정환 감독에 이르러서야 절정에 달했다는 변론이라도 있지만 최익성은 서정환 감독이 2군 감독 시절에 최익성의 타격 폼을 보고 대놓고 태클을 먼저 걸었고 두 사람간의 마찰이 빚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한 서정환의 잘못이다. 실제로 최익성은 최고의 인물과 최악의 인물을 놓고 대답했을 때 최고의 감독은 백인천 감독을 꼽았고 가장 꼴사나운 최악의 인물로 서정환 감독을 꼽았을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을 정도다. 최익성은 서정환 감독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우승에 대한 압박으로 선수층을 쥐어짜며 어떻게든 성적을 내려 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고, 팀만 어수선해졌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삼성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삼성은 기반 자체가 탄탄했던 팀이었고 후임 [[김용희]] 감독이 뒷수습을 잘 해주었기 때문에 KIA와는 달리 선수 혹사로 인하여 암흑기로 굴러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사실 팀 타선을 리빌딩한 [[백인천]] 감독의 공이 컸다. 2000년대 초 삼성은 [[임창용]], [[배영수]], [[김현욱(야구)|김현욱]], [[김진웅]], [[노장진]]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투수가 별로 없었지만 대신 [[이승엽]]을 위시한 강타선으로 성적을 냈던 팀이었다.] 의외로 이승엽과는 케미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2007년 KIA 감독 재임 당시 타격 폼이 엉망이던 김주형의 타격 폼 개선을 하고자 요미우리 소속이었던 이승엽을 추천했을 정도. 참고로 서정환과 이승엽은 [[경북고등학교|고등학교 시절 직속 선후배 관계 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